'관심기사'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21.05.01 "인생 마음대로 살 수 있으면 그게 사치" 윤여정의 어록
  2. 2011.05.09 신 ‘투잡스’, 직장인 저술가로 사는 법
  3. 2010.07.07 좋은 직장 그만둔 40대 셋에게 살 만하냐고 물었다
  4. 2010.03.24 아빠와 아들
  5. 2009.07.14 한장짜리 보고서에도 스토리를 담아라
  6. 2009.04.22 메가스터디 대표 손주은
  7. 2009.02.23 역량있는 관리자를 만드는 습관, 품의서 작성의 口訣
  8. 2008.07.19 개인의 자선, 국가의 복지에 관해 생각해 볼만한 글.
  9. 2008.07.19 마음이 하는 일에 이유가 있을까
  10. 2008.02.05 "도시농업? 거창할 것 하나도 없어요"

"인생 마음대로 살 수 있으면 그게 사치" 윤여정의 어록

관심기사 2021. 5. 1. 12:27

나는 그냥 사람을 보고 사람이 좋으면. 그걸 갖고 온 프로듀서가 내가 얘를 믿는 얘면 그러면 하리라 그랬기 때문에 그때서부터 제가 사치스럽게 살기로 결심했어요. 제 사치는 이건 다 빌린 겁니다. 협찬받은 거. 이런 게 아니고 내가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사치스러운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가 뭘 계획을 안 하고 이 대본을 갖고 온 애가 내가 정말로 믿는 얘였고 정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있었어요.

 

원문 : www.ytn.co.kr/_ln/0104_202104261357295594

:

신 ‘투잡스’, 직장인 저술가로 사는 법

관심기사 2011. 5. 9. 17:06
펀글 : 시사IN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5

정범준씨(필명·41)는 회사원이다. 그리고 저술가다. 하이닉스반도체 홍보팀에서 일하며 책을 쓰고, 책을 쓰며 일한다. 2006년에 첫 책 <제국의 후예들>을 펴냈다. 조선 왕실 후예들의 삶을 다룬 책이다.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서 쓰게 되었다. 컴퓨터 앞에 앉는 일은 여전히 두려웠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료를 모으고 책의 구성에 골몰하는 것이 마냥 좋고 즐거웠다. 언뜻 ‘이것이 나의 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첫 책을 낸 이후로 정씨는 해마다 책을 한 권씩 펴냈다. 2007년에는 언론인 단체 관훈클럽을 통해 한국 언론사를 짚은 <이야기 관훈클럽>을 출판했다. 2008년에는 정씨가 가장 아낀다는 <거인의 추억>을 세상에 내놓았다. 야구 선수 ‘최동원 평전’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야구 선수들 이름을 줄줄 외운 야구 소년이었다. 롯데자이언츠 창단 어린이 회원이었던 것을 지금도 자랑으로 여긴다. 첫 책을 내기 전부터 이미 최동원 선수의 평전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009년에는 소설가 이병주 평전 <작가의 탄생>을 썼다. 이병주의 소설 <관부 연락선>을 읽고 나서 ‘이병주 월드’에 빠져들었다. 이병주가 쓴 글이라면 사보에 실린 칼럼까지 찾아서 읽었다. 그리고 지난해 <마흔, 마운드에 서다>를 상재했다. 사회인 야구를 시작하면서 틈틈이 기록해둔 야구팀 이야기를 논픽션으로 썼다. 각기 다른 주제의 책을 해마다 써내는 사람. 정범준씨는 ‘직장인 저술가’이다.     


   
ⓒ조우혜
정범준씨는 주말에는 야구를 하고, 주중 저녁에는 살사 동호회에 나가 춤을 배운다.


취재 약속을 잡기 위해 그에게 전화를 했다. 월요일·수요일·목요일은 퇴근 후에 살사 연습을 하러 홍대 쪽으로 가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사회인 야구 시합이 잡혀 있다고 했다. 세상에, 글만 쓰는 게 아니라 살사까지! “뭐든지 배우고 익히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지난해 3월부터 다음 카페 살사 동호회 ‘보스톤’에서 살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정범준씨, 해마다 한 권씩 42권 집필이 목표

“살사를 꼭 배워보고 싶었다. 살사가 꽤 어려워 몇 개월을 해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다. 그래서 1주일에 무조건 2회 이상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성실(誠實)의 ‘성’자가 말씀 언(言)과 이룰 성(成)으로 만들어졌다. 말하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부터 그를 잘 아는 출판사 알렙의 조영남 대표는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끝까지 파고드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학창 시절에 만난 친구 삼총사의 이름 가운데 한 글자씩 따서 필명을 정했다. 대학 시절 노래패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학교 생활은 심드렁했다. 단편소설을 써서 대학 문학상을 받기도 했지만, 글을 계속 쓸지는 자신하지 못했다.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졸업 이후 취업이 쉽지 않았다. 3년을 놀았다. 부산으로 내려가 산에서 산불 감시하는 ‘공공 근로’를 하기도 했다. 2000년에 한 IT 잡지사에 취직했고, 그때부터 1년6개월쯤 일하고 두세 달 노는 생활을 반복했다고 한다. 옮기는 직장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좋았다.


   
정범준씨(위)는 뭔가 ‘필’이 오면 전력질주한다. 야구도 그렇게 시작했다.정범준씨, 무엇을 썼나?<제국의 후예들> <이야기 관훈클럽> <거인의 추억> <작가의 탄생> <마흔, 마운드에 서다>


한 출판사의 의뢰로 첫 책을 내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좋아서 하는 일, 즐겨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심했다. 해마다 책 한 권씩 쓰자고. 목표도 정했다. 42권을 쓰는 거다. 마라톤 42.195㎞를 뛰듯이. 그는 논픽션 작가로 유명해지면 한 해에 두 권씩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생 책 한 권을 못 쓰는 사람도 많은데, 그는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할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시간 여유가 있는 편이다. 평소에 자료를 틈틈이 모은다. 자료를 보다보면 쓰고 싶은 책 주제가 이어져 나온다. 자료를 모으고 나서는 대략 3개월 동안 글을 쓴다. 주로 겨울철에 글을 쓴다.”

왜 겨울철에 글을 쓰냐고? 겨울에는 야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야구 마니아이다. 야구를 보는 게 취미였다. 2008년 가을부터 사회인 야구에 뛰어들었다. 그가 책에 쓴 한 대목은 이렇다. “그때 내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마흔을 앞둔 사내의 즐거움이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뭔가 설레고 울렁거리게 하는 일, 그러면서 즐거움과 행복함을 주는 일은 과연 없을까. 인생에서도 성적 오르가슴 같은, 그러니까 엑스터시를 느끼게 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흔을 앞둔 나이에 야구를 시작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다고 한다. 마운드에 서는 게 그의 꿈이었다.

그는 뭔가 ‘필이 오면’ 그 길로 전력 질주한다. 10개월 동안 퇴근하고 나면 일주일에 두 차례씩 야구 교실로 가서 투수 레슨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토요팀 ‘터틀즈’에서 투수로 활약하고, 일요팀 ‘K드래곤즈’에서는 1루수로 나선다. 야구를 배우면서 틈틈이 야구 일기를 썼다. <마흔, 마운드에 서다>는 그 튼실한 부산물이다.   

정범준씨에게만 시간이 하루 48시간이 주어진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흔히 마음은 있는데 사는 게 바빠서라는 말을 하지만, 마음만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 마음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내게는 약간 ‘맹구 기질’이 있다. 봉숭아학당의 맹구가 ‘저요, 저요’ 하고 손들면 다른 사람들은 다 손을 내려야 하지 않는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일이라면 남들보다는 내가 조금이라도 더 좋아한다는 ‘티’를 내고 싶다. 그걸 열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야구나 살사, 책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마음과 열정을 증명할 수밖에 없다.”

한 해에 책 한 권씩 쓰는 직장인 저술가. 마라톤 뛰듯이 42권을 쓰겠다는 정범준씨. 대화하는 중에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책 주제들이 줄줄 이어졌다. TBC, 삼양라면, 영창피아노, 5·16 쿠데타 이후의 풍경 등등. 열정과 호기심은 그의 ‘페이스 메이커’였다.


   
ⓒ시사IN 윤무영
신인철씨(위)는 토요일 오전에 미리 정리한 자료를 토대로 4시간씩 글을 쓴다. 신인철씨, 무엇을 썼나?<토요일 4시간> <레이체스터 이야기> <럭셔리 마이 백> <굿바이 핑계> <직장생활에서 놓쳐서는 안 될 33가지 기회> <마법의 지갑> <팔로워십, 리더를 만드는 힘> <핑계> <영웅들의 전쟁> <공대리 성공시대> <황금안경> <부자 신사와 달걀 하나>
신인철씨 ‘자랑스러운 마마보이’ 자처


신인철 LG생명과학 홍보팀 과장(35)도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파’이다. 대학에서 한문학을 전공한 신씨도 배우는 일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자랑스러운 마마보이’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교육열이 높았다. 국·영·수 학원을 뺑뺑이 돌리는 그런 교육열이 아니다. 부모는 무슨 일이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좋다고 여겼다. 초등학교 때부터 무술을 배웠다. 태권도 1단, 합기도 1단을 땄다. 검도도 배웠다.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익혔다. 독주가 가능할 정도로. 중학교 때는 전자 오르간을 독학으로 배웠다.

대학 시절에는 레크리에이션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다. 축제 사회자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레크리에이션 아르바이트와 멸치 상자 나르기 등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았고, 방학 때면 해외를 돌아다녔다. 30개국. 남들이 잘 모르는 곳, 낯선 곳을 찾아가는 일이 즐거웠다.

고등학교 때 글쓰기대회에서 연거푸 상을 받을 정도로 글 솜씨가 있기는 했지만, 애초부터 이렇게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목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군대 시절부터 그는 MBA 유학이 목표였다. 취미로 유화를 그리던 장교 시절, 틈틈이 어학을 공부했다. 2002년 초 취업을 하고서 ‘주경야독’했다. 퇴근하고 나서 일찍 잠자리에 들고, 밤 1시에 일어나 MBA 준비를 했다. 새벽까지 내처 토플 등 어학 공부를 하고, 곧장 강남에 있는 어학원으로 가서 첫 수업을 두 시간씩 들었다. 그리고 출근. 그렇게 1년6개월을 보냈다. 빡빡한 스케줄로 생활이 황폐해지더란다. 그래도 그에게는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  

그는 모르는 것은 묻는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이 자신이 모르는 것을 다른 이에게 묻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MBA를 준비하면서 해외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어학이 모자라긴 하지만 네 열정이 놀랍다. 들어오면 칼리지에서 어학 코스를 빨리 끝내고 입학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회신을 받았다. 그즈음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졌고, 유학을 포기했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나, 싶었지만 금세 툭툭 털고 일어섰다. 경영학을 독학하기로 마음먹었다. 필립 코틀러·프리드만·크루그먼·루빈 교수 등 이메일 주소를 알 수 있는 해외 학자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나를 소개한 다음 ‘당신의 어떤 책을 보았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책을 추천해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어떤 이는 책 목록을 보내오기도 했고, 어떤 이는 참고할 PDF 파일을 첨부해 보내왔다. 밤마다 해외 학자들로부터 추천받은 원서와 번역본을 읽으며 독학했다. 1년6개월 정도 공부를 했더니 흐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자기가 공부한 것을 꼼꼼히 정리했고, 그 노트를 바탕으로 틈틈이 글을 썼다. 2004년 9월에 첫 책을 냈다. 지금까지 그는 경제경영 분야의 자기계발서 열두 권을 썼다. 세 권은 홍콩, 타이완에서 번역·출간되기도 했다.

열심히 할 때의 희열, 마무리할 때의 쾌감 커

신인철씨는 사내에서 직장인 문화예술 모임인 ‘르네상스 워커스’를 제안해 활동하고 있다. “농부가 농사를 지으면서 그림을 그리고, 사무원이 일을 하면서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 스페셜리스트보다는,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르네상스형 제너럴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토요일마다 종로에 있는 전수소에 가서 가야금을 배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신씨가 최근에 낸 <토요일 4시간>은 서점에서 반응이 좋은 편이다. 틈새 시간과 토요일을 활용하자는 그의 소박한 제안에 공감하는 이가 많다. 그는 항상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 노트북으로 자료를 정리한다. 자료용으로, 집필용으로 노트북 3대와 데스크톱 1대를 사용한다. 토요일 아침 8시에는 집 근처 커피숍으로 간다. 평일 퇴근 이후에 공부하거나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토요일 오전에 4시간 동안 책을 쓴다. 낮 12시쯤 집에 들어가 아내와 청소를 하고 9개월 된 아이를 돌본다. 책이 한 권, 두 권 나오는 걸 보면서 신씨의 작업에 대한 가족의 이해도 깊어졌다. 어머니는 신인철씨가 새 책을 낼 때마다 즐거워한다. 전업주부인 아내도 토요일 오전 신씨의 외출을 양해한다.

직장 동료들도 그가 책을 쓰는 것에 신기해한다. 그가 빡빡한 회사 일을 하면서 책을 내는 것을 보며 간혹 ‘누군가 대신 써주는 사람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직장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시간을 이렇게 촘촘하게 쓰는 것. 혹시 피곤하지 않을까. “느긋한 삶도 그 나름의 기쁨이 있겠지만 나는 좋아서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데에서 희열을 느낀다. 글 쓰면서 하는 고민만큼이나 마무리했을 때의 쾌감이 크다.” 그리고 그가 덧붙이는 한마디. “벼슬을 안 한 사람들의 제문에 ‘학생부군신위(學生府君神位)’라고 적지 않나? 학생이라는 말을 붙인 데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평생 공부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천생 ‘직장인 저술가’이다.
:

좋은 직장 그만둔 40대 셋에게 살 만하냐고 물었다

관심기사 2010. 7. 7. 23:07

출처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11314&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9

좋은 직장 그만둔 40대 셋에게 살 만하냐고 물었다
이들이 15년 넘게 다닌 직장 제 발로 뛰쳐나온 이유
10.07.07 15:02 ㅣ최종 업데이트 10.07.07 15:02  정진선 (newmorning)

  
▲ 출근길 사당역 아침 전철역에 들어가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
ⓒ 정진선
 출근길

1년 전부터 멀쩡한 직장을 스스로 그만뒀다는 지인들의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들 모두 대박을 노려 창업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 중에 기댈 만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모아둔 개인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지만, 명예퇴직을 걱정할 40대 나이에 그들은 왜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었을까? 혹시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을 만나보았다.


이 간 큰 사람들은 한 차례 사업 경력을 빼고 20년간 전자 관련 회사에 근무하다가 고소득 연봉을 받던 대기업을 퇴직한 윤성호(가명, 43세 남성)씨, 박사학위 취득 후 15년간 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유수의 사회과학연구소를 퇴직한 김수진(가명, 47세 여성)씨, 대학졸업 후 16년간 편집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안정적인 잡지사를 퇴직한 이수경(가명, 40세 여성)씨다.


"처음으로 평일 낮에 따사로운 햇빛 받으며 걸어봅니다"


지난 1년 동안 놀랍도록 활기차면서도 편안한 인상으로 변한 윤성호씨를 만났다. 솔직히 예전 그의 표정의 반을 차지했던 짜증은 온데간데 없어져 적잖이 놀랐다. 그가 20여 년 간의 직장 생활 중 힘들 때는, 근무시간 중에 집중해서 열심히 일하고 '칼' 퇴근해서 개인 시간을 충분히 갖길 원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설렁설렁 일하면서 밤늦게까지 집에 가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입사 초기에는 이런 비효율적이고 상식적이지 않은 회사생활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차차 그도 모나지 않게 사회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이러한 분위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시키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고 본인 방식으로 일하기가 어려운 분위기도 싫었다고 했다. 그는 업무 효율이나 일의 즐거움과는 상관없이 이전 사람들이 혹은 윗사람들이 해오는 대로 그대로 일하기만 바란다고 느꼈다. 평소 생각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그였기에 이 말에 충분히 공감이 갔다.


결정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한다.


"20년 동안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하루 종일 앉아서 정해진 일을 하는 것이 너무 지겨웠어요. 회사 밖에서 개인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싶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처음으로 평일 낮에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길을 걸었을 때의 그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늦잠도 자고 술도 실컷 먹고 여행도 가고 낮에 영화도 보고 정말 신나게 보냈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마음공부도 하고 자원봉사도 해보고, 개인상담, 집단 상담, 명상, 비폭력대화 등의 심리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심리상담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동안 맺혀있는 줄도 몰랐던 사건들과 감정들을 남들에게 털어놓고 엉엉 울어도 봤어요. 참가자들끼리 서로 위로, 지지, 따뜻한 조언도 나누면서 안정감도 느끼고 행복했습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취미로 기타 연주를 즐겼는데, 퇴직 후에 시간이 많으니 연습할 시간도 많아졌고 연주 실력도 순식간에 늘었다고 기뻐하고 있다. 또 시민단체 봉사를 통해 똑똑하고 넉넉한 분들을 알게 된 것도 행운이었다.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셨거든요." 그는 환한 표정으로 연신 행복하다고 말했다.


개인 생활과 회사 수입을 맞바꾸다


개인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 두다니, 무모하고 엉뚱한 사람이라 생각이 들면서 경제 활동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여 물었더니, 프리랜서 번역일을 하면서 기본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회사 다니던 때보다 수입이 1/4로 줄었다고 한다. 그전처럼 사고 싶은 것을 사지 못해서 불편할 때도 있고, 아내한테 괜히 미안해 질 때도 있다. 모임에 갔을 때 기분 좋게 한턱내는 일이 없어지고, 부모님 용돈 못 드리는 점도 마음에 걸리는 불편이 있지만, 기본 소비도 1/4로 줄여버리니 별로 불편한 점 없이 산다고 했다.


노후에 대해 물었더니,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노후에 버는 돈이 더 적어지면 그때에는 더 적게 소비하면 된다"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가 소비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말해서, 원래부터 소비 욕구가 적은 사람인지 물었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했다.


"단지 소비에 대한 욕구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살고 싶은 욕구가 더 큰 것뿐이에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자유롭고도 싶고 그러면서 돈도 벌고 싶고…. 저야말로 완전히 욕심꾸러기이죠. 하하하."


"회사에 매이지 않고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면서 비로소, 막연히 개인 시간을 갖고 싶었다는 소망에서 더욱 발전하여, 나라는 사람이 중요시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게 되어 기쁘다"라고 말하는 그를 보니, 그동안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욕구를 발산하지 못했던 이 사람의 괴로움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뷰를 하는 내내, 그전과는 다른 여유와 당당함을 그에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과 '행복'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한 사람에게 돌아온 당연한 결과물일 것이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사는 그의 용기가 부럽고 그가 앞으로 계속 창조해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궁금해진다.


"소비는 선택적으로 하고 욕망은 관리하면 됩니다"


주위에서 악바리이자 성실의 화신으로 여겨지던 김수진씨가 국내 유수의 연구소를 그만두고 나온 이유는 몸이 쉬고 싶고 자기 전공인 사람과 사회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서다. 그녀는 사회과학 관련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딴 후에 15년간 민간연구소와 국책연구소를 다녔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연구가 전공이지만 너무 많은 일을 처리하고 너무 많은 보고서를 쓰다 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에 대해 제대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였다.


그로인한 보고서의 질적인 저하에 대해서도 스스로 불만이 생겼고, 성과만을 중시하는 시스템에 심신이 지쳤다. 연구소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니던 연구소를 '보고서 공장'이라고까지 불렀다.


직장을 그만 두고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인터뷰 초기의 경직된 얼굴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자신은 놀 줄을 모르는 사람이라 이제라도 잘 노는 법을 배우고 싶단다. 또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늘 결과에 집착하였는데, 집중적인 마음공부를 통해 이런 성격도 바꿔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배운 지식을 연구나 강의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대중과 나눌 수 있는 길은 없나 찾아볼 생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이나 살고 싶은 삶의 형태를 아직 모르겠다고 하였다. 아무래도 많은 방황을 해야 그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추측해 보지만 단 한번 뿐인 인생, 즐겁게 살기 위해서 '뒤늦은 방황'은 필수라고 믿고 있다.


퇴직 후에 실제 생활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제일 좋은 것은 병원을 꾸준하게 다닐 수 있는 거죠. 제가 만성질환이 있었는데 바빠서 치료를 받다 말다 해서 자꾸 재발하였는데 꼬박꼬박 치료를 받아 한결 건강해졌어요. 몸이 편하니 마음도 편하고요. 여유롭게 자신과 주변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고 읽고 싶었던 책을 맘껏 볼 수 있어서 좋아요."


병원을 꾸준히 다니게 되어서인지 정말 그녀의 혈색이 예전보다 훨씬 나아보였다.


아들에 대한 경제적 책임은 그만


역시 김수진씨도 경제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하여 물었다. 그녀는 혼자 먹고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지만, 대학생 아들이 걸린다고 한다. 대학 3학년생인 아들의 등록금은 올해까지는 저축액으로 해결되겠지만, 4학년부터는 휴학을 해서 벌든지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학창시절에 어렵게 공부한 경험이 있고, 오히려 그 덕택에 자립심이나 책임감 등이 키워졌다고 생각하므로, 아들에 대해서도 별로 걱정이 안된다면서 이미 결정을 했다고 한다.


"이제 성인이 된 아들에 대한 경제적 책임은 그만하렵니다."


'소비는 선택적으로 하고 욕망은 관리한다'라는 문구를 어디선가 읽은 그녀는 그 말 그대로 살고 있다. 얼마 전에 서울에서 경기도 외곽으로 이사 왔는데 사는 지역이 변하니 소비도 변했다. 특히 산자락에 살다보니 주변에 마트나 상점이 없어 소비 충동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웃들의 소비 수준도 높지 않아 상대적 박탈감도 느끼지 못한다.


"예전에는 탈출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는지 여행에 대한 욕심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습니다."


그녀를 만나면서 그녀의 확 달라진 혈색만으로도 일단 그녀가 직장을 그만 둔 것에 대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박사까지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하느라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짠했다.


한편, 누군가 청춘시기에 방황을 충분히 했다면 40대 후반에 와서는 방황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10대, 20대에 충분히 방황을 해 본 40대 사람을 주변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전철역 거울에 퇴근하는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이혜경씨는 대학 졸업 당시 유행하던 트렌디 드라마 영향인지 전문직 여성에 대한 동경이 많았다.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사회에서 꼭 필요한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일을 통해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사람이 당연히 될 거라 생각했다.


회사 생활 초창기에는 본인 능력 이상의 업무를 해야 할 때 힘들었다. 하지만 노력하고 도전하여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 속에 뿌듯함도 많이 느꼈다. 사회생활을 할수록 상사와의 인간관계가 어려웠다. 무조건적인 복종을 바라고 비용을 반으로 줄이라는 등의 말도 되지 않는 요구에 황당했다.


"아무튼 전 예스맨이 될 수 없었어요. 절대 복종이라는 면에서 회사가 군대 같다고 생각하지만 군대에서 같은 내무반 사병끼리도 경쟁하나요?"


상사는 그녀보다 나이가 일곱살이 많아 '야', '너'라고 반말을 했고, 그녀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조심스럽게 호칭이 듣기 불편하다고 건의했다가 눈총을 받으며 몇 달을 보낸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가 학교나 친목 모임 등 다른 곳에서 만난 연장자가 반말하는 것이 특별히 거슬렸던 적은 없었다.


"왜 유독 회사상사에게 반말 듣는 것이 싫었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할 것 같아요."


회사 안에서 정치적인 활동, 소위 라인에 줄을 서지 않았다. 회사사람들과 같이 밥도 먹고 수다도 떨었지만 상대 라인을 제거하기 위해 이간질, 모함 등이 판치는 걸 보고 마음을 주지 않았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야근이었다. 잡지사다 보니 마감에 일이 몰려 한 달에 보름은 밤 12시까지 일했다. 그녀는 긴 한숨을 쉬고 말을 이어나갔다.


"몸이 너무 힘들죠. 전철역 거울에 퇴근하는 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어요. 너무 피폐해 보여서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몸이 아파도, 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오로지 야근을 해야 했다. 죽을 것 같아 스스로 뛰쳐나왔다. 이제 살 것 같으냐고 묻자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혜경씨는 현재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고 있다. 아르바이트는 수입이 적지만 짧은 시간 내에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수 있는 측면에서 괜찮다고 본다. 본인이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대부분 시간을 회사에서만 지내다 보니까 그로 인해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컸다. 가게 갈 시간도 없어 인터넷으로 옷, 화장품, 필요도 없는 잡다한 물건들을 사들였다.


"왜, 지름신이 내렸다고 하잖아요. 정신없이 사들이면 헛헛한 마음이 일시적이었지만 달래졌죠. 지금은 벌이가 줄다보니 예전처럼 쇼핑을 할 수도 없지만, 공허함이 줄어들면서 이것저것 많이 사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아요, 꼭 필요한 것만 사요."


아직은 엄마 집에 얹혀 사니까 경제적 부담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또 주변 맞벌이하는 친구들도 내 집 마련하느라 빚이 억 단위가 넘어서 풍족히 쓰고 살지는 않는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버린 과거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본인이 선택한 삶인데도 문득문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든다고 한다. 혼자만 도태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다. 마음 한구석에 답답함도 있다.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아무 생각 없이 살아 버렸다는 것을 알아버렸죠."


그런 자신에 마음이 편치 않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자신이 화났는지 불안한지 괴로운지도 못 느끼고 살았는데 이제는 감정 혹은 진실을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고민거리에 대해 묻자, 일에 관해서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예전에는 어떤 일을 할까 고민했는데 지금은 내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우선순위를 매길지 알아보고 있어요."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뿌연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것 같다고 한다. 그녀와 만나면서 그녀가 직장을 다녔을 때 상당히 망가졌고 결국은 그로부터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탈출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그녀가 다시 '마감 노동자'로 돌아갈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산산이 부서졌던 몸과 마음이 아직은 수습되지 못했기에 아르바이트와 독서 정도 이외에 특별한 활동은 없었다. 그녀가 힘을 얻기 위해 무언가 적극적인 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면서 필자 또한 무엇인가 열심히 하는 삶이 바람직하고 그렇지 않으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터뷰를 마치며


필자는 회사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작은 규모의 직장만을 다녔다. 급여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계속 다니고 싶었음에도 회사가 망해서 어쩔 수 없이 업종을 바꿔가며 여러 회사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 덕택으로 일도 감당 못할 만큼 많지도 않았고, 오히려 내가 사장에게 눈치를 주는 위치에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내심 월급을 많이 주는 큰 회사나 그렇지 않더라도 아주 안정적인 회사를 다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는 했다.


하지만 한때나마 동경했던 직장을 다닌 위 세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세상엔 공짜가 없음을 다시금 느꼈다. 그 훌륭한 직장엔 엄청난 대가가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밀려들어오는 일에 눌려 여유를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잃어가고 있는 것들을 찾는 방법으로 회사에 머무르기보다는 스스로 나오는 길을 선택했다.


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내심 궁금했는데, 이들은 회사를 제 발로 나오고 나서 아직까지는 후회 없이 잘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세 사람 모두 가명을 써주길 원했다. 주목받는 것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가 한번씩은 회사를 때려치우는 상상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잘 나가던 회사에 선뜻 스스로 사직서를 내기가 쉽지 않은 일임에, 이들의 행동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은 틀림이 없다. 이들이 무조건 회사 다니는 사람보다 당당하거나 용기있다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회사를 나왔다고 무모하고 철없는 사람들로 여겨져서도 안 될 것이다.

이들은 단지 또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고, 충분히 존중받을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

아빠와 아들

관심기사 2010. 3. 24. 18:22
영국 아이들은 보통 아빠와 경기장을 다니며 축구와 팬의 자세에 대해 배운다. 이후 머리가 좀 커지면 아이들은 아버지를 멀리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노래하는 팬들에 합류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다시 장년이 되면 가족석으로 돌아와 자신의 아이와 축구를 보는 것이 영국 축구 팬의 일생이다.

듀어든 칼럼 아래 본문중
원문 : http://news.nate.com/view/20100324n03913?mid=s1000
:

한장짜리 보고서에도 스토리를 담아라

관심기사 2009. 7. 14. 23:33
출처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71454101&sid=010401&nid=000&ltype=1

사내방송 통해 문서혁신 강조
상사·부하직원 수시로 소통
간결하고 창의적으로 작성

:

메가스터디 대표 손주은

관심기사 2009. 4. 22. 13:32

인터뷰 중..

나는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는 것은 근거 없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시작과 끝이 자기 의지로 되지 않는데, 행복이란 인간이 너무나 행복하지 않아 만들어 낸 형이상학적 추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죠.
즉 ‘행복을 위해 산다’는 말은 본질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말이에요.
저는 대신 ‘몰입의 평화와 성취감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고 믿어요.

인터뷰1) http://news.joins.com/article/3580153.html?ctg=1201

인터뷰2) http://news.joins.com/article/3580160.html?ctg=1201

인터뷰3) http://news.joins.com/article/3580161.html?ctg=1201

:

역량있는 관리자를 만드는 습관, 품의서 작성의 口訣

관심기사 2009. 2. 23. 22:39
출처 : http://www.zdnet.co.kr/ArticleView.asp?artice_id=00000039161347 지디넷


역량있는 관리자를 만드는 습관, 품의서 작성의 口訣
이정규(안랩코코넛 대표이사)
2007.09.12 / PM 04:42

[지디넷코리아]나의 경험에 미루어 볼 때 비즈니스맨들이 작성하는 문서 중에 가장 힘들게 느끼는 문서가사업 품의서라고 생각한다. 매일 매일의 업무에 대한 증빙을 남겨야 하는 다양한 신청서나 리포트 등의 문서는 회사에서 표준 양식을 인쇄하여 비치하여 놓거나, 디지털 양식을 공용 DB에 보관하여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품의서는 대개 정형화되어 있지 않으며, 표준화된 양식도 없기 때문에 작성자는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반면에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문서가 되기도 한다.

품의서는 의사결정권자를 설득하여 경제적 자원(시간, 사람, 돈, 기회비용)을 투자하도록 요구하는 문서이다. 때문에 품의자가 역량 있는 관리자로서 성장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아주 좋은 MOT(Moment of Trust)가 되기도 한다. 이번 컬럼에서 이야기 하고 싶은 내용은 특별한 대안이 없이 품의서를 작성하거나 검토할 경우에 기본 형식으로 참조할 틀에 대한 것이다.

나는 품의서를 평가하고 승인하여야 할 경우 해당품의서가 잘 되어있는지를 “BOGSAT(보그셋)”이라는 구결로 평가하고 있다. 품의서에 꼭 들어가야 할 내용의 순서라고 할 수 있는데 B(Background: 사업배경), O(Objective:사업목적, G(General Outline:사업개요), S(Specific Tasks: 세부과제), A(Administration: 관리 및 지원 체계), T(Timeline: 실행일정)의 여섯 가지 이니셜로 이를 토대로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B에서는 사업의 필요성과 자사의 Pain에 대하여 설명하고, O에서는 계량 가능한 To-be 모델을 설정하고, G에서는 사업전반의 레벨 1의 개요를, S에서는 레벨 2에 대한 활동과제를, A에서는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조직 및 설비 등의 투자 내역을, T에서는 전반적인 과업의 시작과 완료시점을 Gantte 차트(간혹 Pert CPM 차트)로 요약하게 된다. 추상화레벨이 깊은 레벨 3, 4의 상세 데이터나 근거 데이터는 별첨으로 돌리는 것이 적절하다.

품의자가 가져온 문서를 앞서 설명한 여섯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게 되면, 포함될 어떤 사항이 누락되어 있는지, 어떤 사항이 잘못된 부분에 포함되어 있는지 등이 한눈에 보이게 된다. IT 업계에서 전문가의 길에 접어들 때 이들 여섯 구결을 외우고 훈련한다면 상급자로부터 훌륭한 기획자의 자질이 있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잊지 말 것은 BOGSAT의 앞장에 전체 내용을 요약한 Executive Summary를 넣어, 최고결정권자에게 요점과 급소만을 설명하기를 권고하고 싶다. BOGSAT의 각 장의 한글 제목은 적절히 변경되어도 좋겠다.
:

개인의 자선, 국가의 복지에 관해 생각해 볼만한 글.

관심기사 2008. 7. 19. 21:46
출처 http://blog.ohmynews.com/getnew/222537


휴먼다큐 <동행>을 보다.

분류없음 2008/07/19 11:58 bong~
어머니는 말기암 환자다. 4개월간 지독한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다가 병원을 가봤는데,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많은 암환자가 그러하듯이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았었다. 그러나 없는 형편에 한달에 100만원이 넘어가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병원을 나오고, 마약성의 진통제 알약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나가고 있다.

아들은 밤에 토스트 장사를 한다.  하루에 이것저것 제외하고 얻는 돈은 채 4만원이 되지 않는다. 그는 말기 신부전증 환자이기도 한데, 매일같이 혈액투석을 받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그가 매일같이 고된 장사를 하는 이유는 어머니가 중도에 그만둔 항암치료를 재개하기 위해서다.

"아들이 몸 상해가면서 버는 피같은 돈을 내가 좀더 살겠다고 어떻게 쓰냐"고 어머니는 울먹이며 말한다. 아들이나 어머니나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은 삶이다.

방영이 끝난뒤 방송 홈페이지에 가봤다. 역시나 그들에게 힘내라고 응원하는 메세지들로 차있다. 금전적인 도움이나 병원치료 도움을 문의하는 글들도 상당수 있다. 아마, 그들도 그 전 프로그램에서처럼 어떤 독지가가 도움을 주거나 여러 물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무료로 치료해주겠다는 대형병원이 나설 수도 있고, 노동은 고되고 돈은 안되는 토스트 장사가 아닌 다른일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도 생길 수 있을것이다.

이런 다큐멘터리를 보며, 눈물짓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그곳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사고가 멈추어서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렇게 살 수 없는 이유는 개개인의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이 넘어가는 나라에서, 가난하다고 병원에가지 못하고 고통속에서 죽음의 문턱으로 이끌려가는 사람들이 내 팽겨치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

그들에게 자선을 배풀고, 그 수혜자들이 다시 삶의 희망을 갖게 하는 일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자선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지옥과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 모두에게 자선을 배푼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임에, 그런 삶들은 계속 재생산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나라 정부에게 가난한 사람에게도 행복한 삶을 영유하게 할 수 있는 복지를 요구하면 된다. 가난한 사람도 돈에 구애됨이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는 무상의료, 그리고 가난한 사람도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무상교육을 요구하면 된다. 이것은 결코 실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국민소득 1만불이 넘어섰을때 다 실현했다. 그들과 우리가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정치"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았던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알지못했다는 점 뿐이다.

이제 2만불 넘는 수준높은 소득수준을 갖은 나라답게, 국민들도 좀 수준높은 정치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정치의 공간이 무엇인지 좀 공부하고, 무엇을 어떻게 할 있는지 요구할 수 있는 국민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의 말 마따나 아름다운 자선으로는 세상의 억압과 착취는 결코 끝낼 수 없다. 억압과 착취는 정치로 끝내는 것이다.
:

마음이 하는 일에 이유가 있을까

관심기사 2008. 7. 19. 21:35
원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99590.html

마음이 하는 일에 이유가 있을까
한겨레
» 마음이 하는 일에 이유가 있을까
김영민의 영화 인문 /

⑤ 김지운<달콤한 인생>(2006): ‘진짜 이유가 뭐죠?’

1. 내가 가까운 학생들을 훈련시킬 때에 지키며 되새기도록 권하는 지침 중의 하나는 ‘네 마음을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지침은 ‘고백과 소문은 반칙’이라거나 ‘생각은 공부가 아니’라는 등의 지침들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 지침에 견결하기만 해도 참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지요. 요체는 ‘탈심리주의적 태도’인데, 신뢰는 결코 심리의 바다 속에서 건져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의 보스와 선우의 경우처럼, 호감이 관계를 구원할 수 없는 곳, 바로 그곳이 우리의 세속입니다. 2. 다음은 윤종빈의 <용서받지 못한 자>(2005)입니다.


선우는 왜 보스를 배신했을까? 보스는 왜 선우를 죽이려 했을까? ‘진짜 이유’는 아무도 그 진짜 이유를 모른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이유란 영영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대상이며 인문의 촉수인 것. 보스와 선우의 죽음은 인과를 따져야 할 건달들이 이유를 따지고 헤아린 죄, 그것이 죄라면 죄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을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은 나뭇가지나 바람이 움직이는 것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그랬다면 그것은 ‘원인’을 캐고 제거하는 스릴러물로 낙착되고 말았을 것이다. 영화의 도입부 대사 중에서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라는 스승의 말 속에서, 문제는 원인이 아니라 이유이며 영화의 취지는 사실의 확정이 아니라 인문(人紋)의 탐색이라는 점을 짐작게 한다.

“그런 거 말고 … 진짜 이유가 뭐야?” 보스는 선우에게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캐묻는다. 단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조직에 충성했기에 아내에게 못하는 말조차 털어놓을 만큼 믿었고, 사랑에 무심한 듯했기에 자신의 애인마저 맡겼던 그가 흔들린 것이다. 보스는 과거의 선우를 일깨우며 다그친다. “너, 그런 놈이 아니잖아!” 물론 보스의 믿음은 원인-결과로 확인되는 부하의 객관적 충실도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그 객관성을 비집고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부하의 주관성은 단지 배신의 시늉이 아니다. 말하자면, 보스는 그가 조직의 세계에서 ‘돌이킬 수 없이’(이것은 이 영화의 채택되지 못한 제목이기도 했다) 어긋난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직감했던 것이다. 사과의 맛을 본 아담이 돌이킬 수 없이 낙원에서 멀어진 것처럼, 소크라테스를 만난 플라톤이, 혹은 예수를 만난 바울이 돌이킬 수 없이 변해간 것처럼, 그 여자의 어떤 이미지를 접한 그는 이미 객관성(인과의 충실성) 속에 붙잡아 둘 수 있는 조직의 단말기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보스의 과도한 반응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선우는 늘 자신의 소임을 오차 없이 수행하는 해결사로서 ‘체계의 노동’에 완벽했지만, 스쳐 지나가야만 했던 그 여자의 인상에 밟힌 그는 실없는 ‘정서의 노동’을 자임하며 보스의 체계와 치명적으로 대치한다.


» 마음이 하는 일에 이유가 있을까
“진짜 이유가 뭐죠?” 죽음의 문턱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 선우는 총을 들고 보스와 마주 선다. 그리고 건달답지 않게 무엇보다도 이유를 궁금해한다. 자신을 죽여야 하는 원인이 아니라 이유, 그것도 ‘진짜 이유’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그는 7년 동안이나 보스를 위해 개처럼 일해 온 자신을 그처럼 쉽게 죽이려 했던 ‘이유’에 절박하게 매달린다. 그러나 조직이라는 체계 속에서 쓸모 있는 질문의 방식은 ‘이유’가 아니라 오직 ‘원인’일 뿐이다. 인과가 아니라 이유를 묻는 사이는 이미 명령-복종의 체계를 벗어난다. 이유는 인문(人紋)의 촉수이며, 그것은 조직적 체계가 부리는 인과의 그물망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거 말고 … 진짜 이유가 뭐야?”라고 물었던 보스에게 그가 그 ‘진짜 이유’를 대지 못한 것처럼 “진짜 이유가 뭐죠?”라고 묻던 그에게 보스도 그 ‘진짜 이유’를 말하지 못한다. 선우는 ‘두 사람이 다시 만나지만 않는다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대답하지만 그것은 그가 추정한 원인-결과였지 보스가 요구한 ‘이유’가 아니었다.

보스와 선우는 ‘진짜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치명적인 궁금증 속에서 불구적으로 대치한다. 그러나 어느 쪽도 결국 그 진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상대를 죽이려 들고 또 상대를 죽이고야 만다. 애매함은 더러 매혹적이고, 그 매혹은 더러 치명적이다. ‘이유 없는 반항’이자 ‘이유 없는 처벌’이라는 점에서 이 조폭영화는 실존적인 울림을 얻고, 원인과 결과라는 선형적(線形的) 조직이 수용할 수 없는 잉여의 부분 속에서 인문의 결마저 생긴다. 실은 이유라는 것은 영영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대상이며, 그 알 수 없는 대상을 향한 쉼없는 재서술의 과정이 곧 인문학의 내적 동력이기도 하다.

<달콤한 인생>의 한 측면은 ‘체계의 노동’과 ‘정서의 노동’이 상충하는 지점을 매우 섬세하게 드러낸다. 보스의 오른팔이었던 선우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처벌받는 것은, 체계의 노동만으로 자신을 증명해 왔던 그의 인생 속으로 달콤한 정서를 인입한 탓이다. “표정 속에 욕망이 드러나는 조직의 3인자 문석(김뢰하)은 시험받지 않지만 욕망에 초연해 보이는 선우만이 체계의 알리바이가 되어 줄 희생양으로 지목”(김현수)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서는 못 박듯이 서술될 수 있는 게 아니며, 더구나 조직은 정서의 노동을 체계적으로 배제함으로써만 자신의 체계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자신의 애인을 감시하고 필요한 경우 처리하라는 보스의 명령은 엄밀히 ‘체계의 노동’이었다. 그렇기에 보스는 일견 연정에 초연한 듯한 그를 택했을 것이다. 그 역시 그것을 체계의 노동으로 이해하고 수행하지만, 무심결에 간취한 그 여인의 이미지는 예기치 않게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인생은, 참, 그런 식으로만 달콤한 것!)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고, 선우는 그의 보스와 분명한 이유 없이 대치한다. 그 와중에 그는 돌이킬 수 없이 보스의 체계와 멀어지면서 그 여인으로 인한 ‘정서의 노동’을 자임한다. 지멜이나 기든스(A. Giddens) 등의 사회학자들은 산업사회의 체계 지향적 남자들이 여자들의 공동체 지향적 정서 노동 속에서 휴식과 구원의 기운을 찾는다고들 지적하지만, 하필 그 여자가 보스의 애인이었으니 그 대가는 응당 치명적이었던 것.

사안을 더 근본적으로 살피자면, 보스와 그의 치명적인 대결은 인과를 따져야 할 건달들이 ‘이유’의 와류 속에 휘말린 죄로 소급된다. 한갓 건달들이 이유를 따지고 헤아린 죄? 이것이 죄라면 참으로 이상한 죄다. ‘이유’는 워낙 문사들의 화제(話題)이면서, 펜으로써 쉼 없이 재서술해야 할 대상이지, 칼과 총을 사용하는 이들이 다룰 수 있는 타깃이 못 된다. 펜으로써 원인을 헤아리는 짓이 대개 졸루하다면, 총칼로써 이유를 따지는 짓은 이처럼 치명적이다.


» 김영민의 영화와 인문
그러면 보스와 선우가 동시에 알고자 한 ‘진짜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진짜 이유가 뭐야?”라며 그를 죽이려 했고, “진짜 이유가 뭐죠?”라며 보스를 죽이려 했던 그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속의 내레이션이 시사하듯, 보스의 여인을 두고 한순간 품은 ‘이루어질 수 없는 달콤한 꿈’이었을까? 그러나 화해할 수 없이 충돌하는 그 치명성은 그처럼 하나의 은폐된 이유로 수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너무나 사소한 것이기에 충돌은 금세 그 동력을 잃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외려 진짜 이유는 ‘아무도 그 진짜 이유를 모른다는 바로 그 사실’, 혹은 ‘아무도 진짜 이유를 진짜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화가 묘사하는 둘 사이의 치명성은 바로 그 무지(에의 의지)에서 발원한다. 보스와 그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진짜 이유’로 상대방을 죽이는 게 아니다. 상대를 죽일 수 있는 힘은 오히려 ‘진짜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며, 그것을 강박적으로 찾으려는 애착 속에서 오히려 그 진짜 이유를 밀어낸다는 것이다.

김영민 철학자

:

"도시농업? 거창할 것 하나도 없어요"

관심기사 2008. 2. 5. 15:57
도시농업? 거창할 것 하나도 없어요"
도심 속 옥상, '배추꽃' 피었네

  
▲ 도시 농업 아파트가 줄줄이 서있는 고속도로 변 '텃밭'을 이용해 도시농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 김정미
도시농업

열병을 잠재웠던 '무농약 고구마'에 대한 기억


지난해 11월, 열병에 시달리던 나를 걱정한 남자친구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왔다. 내 남자친구는 '서울사람', 나는 '제주사람'. 옛날 같았으면 쉽지 않았을 원거리연애를 별 무리 없이 하고 있던 우리는 교통·통신 발달의 일등 수혜자였다.


전화로 내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남자친구는 1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내게로 왔고 대뜸 가방에서 고구마를 꺼냈다.


"웬 고구마야?"

"응. 어머니가 직접 재배한 고구마야."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집 근처 텃밭에서 직접 채소와 과일을 재배한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도시농업'을 몸소 행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친구가 들고 온 고구마 역시 어머니가 직접 재배한 것으로 무심코 한입 베어 문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달콤하고 맛있던지! 서울에 가면 꼭 한 번 그 '텃밭'을 방문하고 말겠다고 마음먹었다.


비닐하우스가 도심가 옥상에?


그러던 중 지난 3일, 드디어 '텃밭방문'을 할 수 있게 됐다. 서울에 온 지 3주째 되던 날이었다. 그동안 남자친구 부모님 댁에 자주 놀러갔고 찾을 때마다 딸기며, 감이며 어머니가 직접 재배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밭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도 의왕시 고속도로가에 위치한 텃밭. 철문을 열고 들어서보니 야채는 찾아볼 수 없고 갈색 흙만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겨울철에는 날이 춥기 때문에 야채가 자라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밭도, 어머니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 대신 어머니는 요즘 집 옥상에 있는 자그마한 비닐하우스에 야채를 재배하고 있다. 집에서 텃밭이 한창 떨어져 있기에 요즘 같은 겨울에는 집 옥상이 제격인 것이다.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변의 다세대주택 옥상. '뭐가 있기는 할까' 싶은 그곳에 야채가 자라나고 있다니 궁금할 수밖에.
 
이날, 어머니는 저녁식사로 배추 된장국과 겉절이를 만든다고 했다. 부엌칼과 목장갑, 빨간 바가지를 챙긴 어머니는 4층 옥상으로 향했다. 그 뒤를 나도 따라나섰다.

  
▲ 도시 농업 건물 옥상 '비닐 하우스'. 추위에 농작물이 상하지 않을까 비닐로 칭칭 감았다.
ⓒ 김정미
도시농업

좁다란 계단 4층을 올라, 옥상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람이 새지 않도록 비닐로 겹겹이 덮은 작은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빨래집개로 연결하고 돌로 꾹 덮은 비닐하우스. 도대체 무엇으로 지탱하고 있는 걸까?


주섬주섬 비닐을 걷어 문을 여니, 비닐하우스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빨래 건조대. 그 사이 사이 스티로폼 상자와 화분이 놓여 있고 그 안에 야채들이 자라고 있었다.


  
▲ 비닐하우스 꽁꽁 싸맨 비닐하우스를 걷어내고 있다
ⓒ 김정미
비닐하우스

"꽁꽁 얼어버렸네!"


여러 겹으로 싼 비닐도 추위를 막아주지 못한 것일까. 배추며, 파며, 부추며 모두 꽁꽁 얼어 있다. 어머니는 그 중 가장 멀쩡한 배추를 골라 밑동을 칼로 '쓱' 자른다. 그리곤 빨간 바가지 안에 담는다. 굵기도 굵고 잎도 제법 넓은 게 아주 먹음직스럽다. 자세히 보니 '꽃'처럼 생겼다.


"이 정도면 충분히 먹을 수 있겠다!"


배추 두어 개의 밑동을 추가로 자른 어머니는 야채가 담겨진 화분과 스티로폼 안에 물을 준다. 그 모양새가 꽃이 핀 화분에 물을 주는 것 같다. 야채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어머니를 따라 나도 물을 준다.

도시농업을 행하는 어머니 "도시농업이 뭐냐"고 되묻다


'배추꽃'을 한가득 담은 바가지를 들고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내가 '도시농업, 도시농업'하자 어머니는 "도시농업이 뭐냐"고 되묻는다. 도시농업의 정의를 설명하며 "옥상에 있는 비닐하우스도 도시농업"이라고, "일종의 환경운동"이라 하자 어머니는 "가족 건강 생각해서 시작했을 뿐이지 거창할 건 없다"고 얘기한다.


어머니가 밭을 일구기 시작한 것은 올해로 5년째. 날씨가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밭에 나간다. 아버지와 함께 데이트도 할 겸, 새벽 운동도 할 겸 밭을 돌보고 갓 따온 야채로 아침식사를 짓는다.


세 식구 중 둘은 남자라 어머니가 아니면 식사를 준비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남자친구가 출근을 하면 어머니는 소일거리로 옥상에 가 비닐하우스를 돌본다. 그 생활이 5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배추, 고추, 부추, 파, 토란, 호박, 가지, 당근, 고구마, 딸기, 모과, 감 등. 어머니가 밭에서 직접 재배하는 농산물의 가짓수는 10여 가지가 넘는다. 모두 농약을 쓰지 않고 거름으로만 재배한 '무농약 식품'들이다. 어머니는 "최근에 유전자조작식품이다 뭐다 말이 많더라"며 "걱정 없이 직접 재배한 싱싱한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 가장 좋다"고 한다. 


농산물 가격 상승? 가족들 건강? 걱정 노(NO)!


좋은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올랐을 때도 어머니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웬만한 것은 직접 재배해서 먹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는 거름으로 사용하니 쓰레기봉투를 따로 살 필요도 없어 여러모로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고 있다.


밭에서 직접 재배한 야채를 반찬으로 만들어 먹고,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다시 밭으로 돌려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도시 농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생태계와 인간이 직접 주고받고, 받은 곳으로 되돌려 보내는 '친환경적'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 도시농업 음식물 쓰레기는 다시 밭으로 돌아가 '거름'이 된다.
ⓒ 김정미
도시농업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취미삼아 텃밭을 일궜을 뿐인데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생태계를 살리는 '거창한 일'이었다니. 그래서 어머니는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내 말이 괜한 너스레 정도로 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도시농업은 무슨? 그저 가족 건강 생각해서 하는 것뿐이라니까"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나도 이다음에 '주부'가 된다면...


'바른 주부'인 어머니를 보며 나도 나중에 결혼을 하면 옥상이나 베란다에 작은 텃밭을 일궈야겠단 생각을 해본다. 어머니의 말처럼 '그리 거창할 게 없기 때문'이다. 화분 하나에 상추씨를 뿌리고 틈틈이 물을 주면 '상추꽃'이 피고 배추씨를 뿌려 물을 주면 '배추꽃'이 피어난다. 그게 손에 익고 즐거워지면 몇 평 안 되는 조그마한 텃밭을 사서 종류를 늘려가며 농사를 지어보는 거다.


모양은 볼품 없더라도 건강하고 싱싱한 야채를 밥상에 올려 가족들과 함께 나눠먹고 남은 음식은 다시 그 고향인 땅으로 돌려보내는 것. 이런 작은 '도시농업'이 도심 속 환경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