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업? 거창할 것 하나도 없어요"

관심기사 2008. 2. 5. 15:57
도시농업? 거창할 것 하나도 없어요"
도심 속 옥상, '배추꽃' 피었네

  
▲ 도시 농업 아파트가 줄줄이 서있는 고속도로 변 '텃밭'을 이용해 도시농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 김정미
도시농업

열병을 잠재웠던 '무농약 고구마'에 대한 기억


지난해 11월, 열병에 시달리던 나를 걱정한 남자친구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왔다. 내 남자친구는 '서울사람', 나는 '제주사람'. 옛날 같았으면 쉽지 않았을 원거리연애를 별 무리 없이 하고 있던 우리는 교통·통신 발달의 일등 수혜자였다.


전화로 내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남자친구는 1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내게로 왔고 대뜸 가방에서 고구마를 꺼냈다.


"웬 고구마야?"

"응. 어머니가 직접 재배한 고구마야."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집 근처 텃밭에서 직접 채소와 과일을 재배한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도시농업'을 몸소 행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친구가 들고 온 고구마 역시 어머니가 직접 재배한 것으로 무심코 한입 베어 문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달콤하고 맛있던지! 서울에 가면 꼭 한 번 그 '텃밭'을 방문하고 말겠다고 마음먹었다.


비닐하우스가 도심가 옥상에?


그러던 중 지난 3일, 드디어 '텃밭방문'을 할 수 있게 됐다. 서울에 온 지 3주째 되던 날이었다. 그동안 남자친구 부모님 댁에 자주 놀러갔고 찾을 때마다 딸기며, 감이며 어머니가 직접 재배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밭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도 의왕시 고속도로가에 위치한 텃밭. 철문을 열고 들어서보니 야채는 찾아볼 수 없고 갈색 흙만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겨울철에는 날이 춥기 때문에 야채가 자라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밭도, 어머니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 대신 어머니는 요즘 집 옥상에 있는 자그마한 비닐하우스에 야채를 재배하고 있다. 집에서 텃밭이 한창 떨어져 있기에 요즘 같은 겨울에는 집 옥상이 제격인 것이다.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변의 다세대주택 옥상. '뭐가 있기는 할까' 싶은 그곳에 야채가 자라나고 있다니 궁금할 수밖에.
 
이날, 어머니는 저녁식사로 배추 된장국과 겉절이를 만든다고 했다. 부엌칼과 목장갑, 빨간 바가지를 챙긴 어머니는 4층 옥상으로 향했다. 그 뒤를 나도 따라나섰다.

  
▲ 도시 농업 건물 옥상 '비닐 하우스'. 추위에 농작물이 상하지 않을까 비닐로 칭칭 감았다.
ⓒ 김정미
도시농업

좁다란 계단 4층을 올라, 옥상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람이 새지 않도록 비닐로 겹겹이 덮은 작은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빨래집개로 연결하고 돌로 꾹 덮은 비닐하우스. 도대체 무엇으로 지탱하고 있는 걸까?


주섬주섬 비닐을 걷어 문을 여니, 비닐하우스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빨래 건조대. 그 사이 사이 스티로폼 상자와 화분이 놓여 있고 그 안에 야채들이 자라고 있었다.


  
▲ 비닐하우스 꽁꽁 싸맨 비닐하우스를 걷어내고 있다
ⓒ 김정미
비닐하우스

"꽁꽁 얼어버렸네!"


여러 겹으로 싼 비닐도 추위를 막아주지 못한 것일까. 배추며, 파며, 부추며 모두 꽁꽁 얼어 있다. 어머니는 그 중 가장 멀쩡한 배추를 골라 밑동을 칼로 '쓱' 자른다. 그리곤 빨간 바가지 안에 담는다. 굵기도 굵고 잎도 제법 넓은 게 아주 먹음직스럽다. 자세히 보니 '꽃'처럼 생겼다.


"이 정도면 충분히 먹을 수 있겠다!"


배추 두어 개의 밑동을 추가로 자른 어머니는 야채가 담겨진 화분과 스티로폼 안에 물을 준다. 그 모양새가 꽃이 핀 화분에 물을 주는 것 같다. 야채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어머니를 따라 나도 물을 준다.

도시농업을 행하는 어머니 "도시농업이 뭐냐"고 되묻다


'배추꽃'을 한가득 담은 바가지를 들고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내가 '도시농업, 도시농업'하자 어머니는 "도시농업이 뭐냐"고 되묻는다. 도시농업의 정의를 설명하며 "옥상에 있는 비닐하우스도 도시농업"이라고, "일종의 환경운동"이라 하자 어머니는 "가족 건강 생각해서 시작했을 뿐이지 거창할 건 없다"고 얘기한다.


어머니가 밭을 일구기 시작한 것은 올해로 5년째. 날씨가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밭에 나간다. 아버지와 함께 데이트도 할 겸, 새벽 운동도 할 겸 밭을 돌보고 갓 따온 야채로 아침식사를 짓는다.


세 식구 중 둘은 남자라 어머니가 아니면 식사를 준비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남자친구가 출근을 하면 어머니는 소일거리로 옥상에 가 비닐하우스를 돌본다. 그 생활이 5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배추, 고추, 부추, 파, 토란, 호박, 가지, 당근, 고구마, 딸기, 모과, 감 등. 어머니가 밭에서 직접 재배하는 농산물의 가짓수는 10여 가지가 넘는다. 모두 농약을 쓰지 않고 거름으로만 재배한 '무농약 식품'들이다. 어머니는 "최근에 유전자조작식품이다 뭐다 말이 많더라"며 "걱정 없이 직접 재배한 싱싱한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 가장 좋다"고 한다. 


농산물 가격 상승? 가족들 건강? 걱정 노(NO)!


좋은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올랐을 때도 어머니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웬만한 것은 직접 재배해서 먹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는 거름으로 사용하니 쓰레기봉투를 따로 살 필요도 없어 여러모로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고 있다.


밭에서 직접 재배한 야채를 반찬으로 만들어 먹고,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다시 밭으로 돌려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도시 농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생태계와 인간이 직접 주고받고, 받은 곳으로 되돌려 보내는 '친환경적'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 도시농업 음식물 쓰레기는 다시 밭으로 돌아가 '거름'이 된다.
ⓒ 김정미
도시농업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취미삼아 텃밭을 일궜을 뿐인데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생태계를 살리는 '거창한 일'이었다니. 그래서 어머니는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내 말이 괜한 너스레 정도로 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도시농업은 무슨? 그저 가족 건강 생각해서 하는 것뿐이라니까"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나도 이다음에 '주부'가 된다면...


'바른 주부'인 어머니를 보며 나도 나중에 결혼을 하면 옥상이나 베란다에 작은 텃밭을 일궈야겠단 생각을 해본다. 어머니의 말처럼 '그리 거창할 게 없기 때문'이다. 화분 하나에 상추씨를 뿌리고 틈틈이 물을 주면 '상추꽃'이 피고 배추씨를 뿌려 물을 주면 '배추꽃'이 피어난다. 그게 손에 익고 즐거워지면 몇 평 안 되는 조그마한 텃밭을 사서 종류를 늘려가며 농사를 지어보는 거다.


모양은 볼품 없더라도 건강하고 싱싱한 야채를 밥상에 올려 가족들과 함께 나눠먹고 남은 음식은 다시 그 고향인 땅으로 돌려보내는 것. 이런 작은 '도시농업'이 도심 속 환경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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